일신되고 보다 효율적인 체제가 들어섰다

3세기 중반 재개된 내전이 반세기 동안 이어지면서, 평화의 시기도 종말을 고한다. 로 마 제국은 점차 로마 고유의 특징을 잃어가면서, 로마의 제국이 아닌 세계의 제국으로 변해 갔다. 지방에서 부흥한 "거만한" 귀족들이 로마에서 그 세력을 휘두르자, 로마는 옛날처럼 독자성을 가진 도시로서의 명성을 더 이상 지켜갈 수 없었다. 국경에서는 파르티아인들 과 게르만족들이 쉴새없이 국경을 넘어 침략해 왔다. 그러나 로마는 3세기 말부터 시작된 디오클레티아누스(재위 284-305)의 개혁정치와 함께 새 로운 시기로 접어들어갔다. 이때부터 로마는 두 제국으로 나뉘어 두 황제가 통치한다. 모 든 명령체계는 . 다시 1세기 동안 로마는 예전의 안정과 번영을 느릴 수 있었다. 문화적인 면에서는 기독교가 번성하면서 새로운 체제으 지 주가 된다. 그러나 외적들의 침입에 시달리던 서로마제국이 서서히 몰락하면서 제국의 중심은 동로 마제국으로 이동한다. 따라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30년에 세운 콘스탄티노플(오늘날의 이스탄불)이 제국의 진정한 수도로 자리잡게 되었다. 410년 서고트족의 알라리크왕이 로 마를 침략했고, 455년에는 반달족의 겐세리크가 로마에 엄청난 피해를 입렸다. 476년에는 결국 게르만의 오도아케르에 으해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폐위되고 만다. 533년부터 동로마 제국의 황제들은 서로마 제국의 옛 영토를 일부분이나마 회복하고자 노력했으나 그 다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서로마 제국이 역사 저편으로 사라지면서, 고대의 문명세계 거의 전부를 거느리고 통합했던 거대한 단일체, 세계의 제국 로마도 끝을 맺는다. 세계의 제국 로마의 영토는 엄청나게 넓은 지역에 걸쳐 있었다. 로마에서 파견한 행정관이 통치하던 지역은 로마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대략 40여 개에 달했다. 서쪽의 지부롤터에서 동쪽의 흑해, 북쪽의 영국에서 남쪽 사하라 사막과 수단 지방, 아라비아 반도에 이르기까지 펼쳐저 있었다. 로마 군데에 굴복하지 않은 나라는 오직 페르시아 제국뿐이었다. 자발적이든 강제 적이든, 이 엄청나게 넓은 지역의 사람들이 500년 이상을 한 울타리 안에서 살았다. 로마 제국이 이 모든 지역에 흔적을 남기고 또 각 지역들간에 결코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맺어주 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로마는 절대적인 불평등의 사회였다. 로마 시민들이 모두 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노예와 자유시민, 외국인과 로마인, 남자와 여자들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차 별의 벽이 있었다. 로마인들은 폭넓은 가족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살면서 그 속에서 자신의 명예와 안정을 추구했는데, 이런 독특한 사회제도를 '클리엔클라" 관계라 부른다. 제2장 로마인의 일상 고대 로마인들은 노예와 자유시민이라는 매우 판이한 두 부류로 나누어져 있었다. 자유 시민은 소수의 로마인과 다수의 외국인(다른 도시나 로마 제국의 다른 지역 출신인 이들을 페레그린이라 불렀다)으로 구성돼 있었다. 또한 로마 시민들 중에서도 일반대중과 귀족은 엄격하게 계층이 구분돼 있었다. 하지만 이 사회 계층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그 수적인 크기에 반비례하고 있다. 다수를 차지한 노예와 일반시민 계층에 대해서는 현재 전해지는 자료가 거의 없고, 남아있는 것은 엘리트 계층에 대한 자료가 대부분이다. 노예 로마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여러 분야에서 노예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 다는 사실이다. 로마제국은 사실 이 수많은 공노와 사노들에 의해 움직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 노예시장으로 팔려온 이들은 하나의 재산으로 취급되었으며, 어떠한 정치적, 법률적 권리도 없었다. 제정기에 들어와 노예 소유주의 지나친 행위를 금지 하는 조치가 취해지면서 노예들의 형편이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고대 로마 말기까지 노 예 제도는 그대로 유지되었다.